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아래의 글은 임희완교수님의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임교수님의 서양사의 이해를 참조하세요. 서양사개론에 관한 훌륭한 책입니다.

서양 문화를 이루고 있는 바탕이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20세기 중엽이었다. 제 1차 세계 전을 겪으면서 서양인들은 이미 그들의 문명에 대하여 적지 않은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들은 스펭글러의 {서양의 몰락』(1918)을 탐독하면서 서양 문명이 영구히 건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들은 어떤 문명이든 한번 탄생하면 성장과 쇠퇴 과정을 거쳐 결국은 붕괴한다고 믿게 되었다. 더욱이 제 2차 세계 대전을 다시 체험하면서 문명의 위기 의식을 확인하였으며 그들의 엄청난 비극으로 그들 생의 당위성마저 잃을 위험에 부딪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지난날을 회고하는 가운데 역경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찬란했던 그들의 과거 역사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세계의 여러 문명들을 지배하고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서양 문명이 무엇인가 다른 문명들과는 다른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서양 문명이 무엇인가 다른 문명들과는 다른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 문명에 관한 회고를 통하여 위로와 반성, 재기의 전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들의 과학과 기술의 개발, 그리고 그들의 합리적 체계적 사고 방식은 그들의 문명을 확장하고 더 나아가 다른 문명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게 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들의 문명과 역사 의식을 잘 반영한 것이 유명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1934-1961)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양의 학자들과 지성인들은 서양 문명을 다른 문명들과 구분짓는 특성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었다. 이들 움직임에는 지난 세기에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과학자들과 기독교인들도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였다. 왜냐하면 전쟁이나 전체주의 등에 의하여 서양 문명이 붕괴된다면 세속적 자유뿐 아니라 종교적 자유까지도 모두 끝장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서양 문명에 대하여 두 가지의 문제들을 제기하고 이들에 관하여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로는 서양 문명의 밑바탕을 형성해 온 요소들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서양 문명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첫 번째로 그들(서양인들)은 서양 문명을 일으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요소들은 두 가지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모았다. 그 한가지는 유대·기독교적 전통(Hebraism)이며,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로마적 전통(Hellenism)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의 성격과 영향을 아울러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헤브라이즘은 유일신 여호와를 믿는 초월적, 종교적 사상으로 서양인들에게 그들의 경전(성경)을 통하여 일찍부터 인간 개체의 중요성과 도덕적 자유(moral freedom)의 정신을 심어 주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신의 형상(image dei)’대로 태어난 신의 자녀이므로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한편, 후자 헬레니즘은 합리적, 인간주의 사상으로 서양인들에게 인간 개체의 중요성과 정치적 자유(political freedom)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그들의 고전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이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평등하며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들은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발의 근거는 서로 달라도 양자의 사상에 의해 인간의 내적 자유와 외적 자유가 인정되는 기초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다음으로 전자는 서양인들에게 성경의 역사 전개 과정을 통하여 시간의 인식과 역사 의식을 불러 일으켜 소위 직선적 발전 과정(the linear process)의 이론을 낳게 하였으며, 후자는 이와는 다르게 공간적 중요성을 인식시켜 소위 순환적 발전과정(the cyclic process)의 이론을 낳게 하여 주었다. 요컨대 헤브라이즘은 초월적 신중심의 도덕적 자유의 정신을 서양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으며 헬레니즘은 내재적 인간중심의 자아 결단의 정치적 자유의 정신을 서양 사람들에게 일깨워 양자가 서로 협력할 수 없는 적대성을 보여 주고 있으나 모두 인간 개체(individual)의 독자성과 가치를 인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의 연속적 해석
두 번째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상호 관계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서양인들은 역사의 갈등과 대립의 견지에서 서양 역사를 바라보던 종래의 입장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과 연속의 견지에서 관망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은 서양 문명의 가치들이 인간과 우주, 개인의 역할과 사회의 질서에 관한 뿌리 깊은 가설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과거의 단절이 아무리 깊다 할지라도 서양인들은 모두 그들이 가톨릭이건 프로테스탄트이건 유대인이건 아니면 무신론자들이건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면서 하나의 공통된 기초 위에 있어 왔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서양의 역사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두 속성인 정신과 물질, 신앙과 이성, 종교와 철학, 종교와 과학, 종교와 경제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상호 협력과 연속관계의 역사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이 두 가지의 상호 관계에 대해 탁월한 연구를 시도한 사람이 바로 독일의 위대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다룬 첫 번째 사람은 아니었지만 종교적 신념과 다른 인간 활동의 형태, 특히 경제 분야와의 관계에 관한 그의 이론을 전개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는 과학과 기술에 나타나는 서양문명의 특정의 형태 가운데 자본주의로 묘사되는 합리화된 경제활동의 형태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에 의하면 서양 근대 자본주의 이념의 기원은 경제가 아니라 기독교 캘빈주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과 신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여 설명하려 한 기독교의 독특한 방법으로부터 합리주의적 사고방법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유명한 그의 저술인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30)에 잘 나타나 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협력 관계로 서양문명을 관망한 사람은 비단 막스 베버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금세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그러한 움직임들은 적지 않았다. 초기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고전문학과 철학에 넓은 지식을 가진 위대한 사상가들이었다. 성 바울(St. Paul)은 1세기경 오리엔트 지역을 3회에 걸쳐 순회하면서 헤브라이와 기독교, 그리스의 문화들을 종합한 인물이었다. 그 후 5세기경 초대교회의 위대한 라틴 교부인 어거스틴은 비록 헬레니즘세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지만 헬레나이즈된 교육방법들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가졌다. 그리하여 그는 신앙들을 그리스 철학을 통하여 체계적 교리를 형성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양자의 사상적 요소가 거의 일체화된 것은 13세기경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독교에 적용하여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하였다. 기독교는 이제 자연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설명하는 데 매우 정교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서양인들은 자연 세계의 진리와 신의 진리 사이에는 어떤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의 창조의 본질적인 완전성과 합리성은 서로 어긋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대의 탁월한 과학철학자 화이트헤드도 17세기의 위대한 과학 혁명의 공헌은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적 사상에 돌려야 한다고 설명한 것은 모두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가설인 것이다.

20세기에 중엽에 들어와 이와 같은 견지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서양문명의 역사를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기복현상으로 해석한 사람들은 폴 콘킨(Paul Conkin)과 롤랜드 스트롬버그(Roland Stromberg)였다. 그들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서양 문명이 2대 본질로 보고 이 두 가지의 고대 문명의 요소들이 주축이 되어 서양역사를 이끌어 갔다고 개관하였다. 말하자면 중세, 종교 개혁, 낭만주의 시대는 각각 유대 기독교적 전통(헤브라이즘)이 우세했던 시대였으며, 르네상스, 17세기, 계몽시대, 20세기 등은 그리스·로마적 전통(헬레니즘)이 각각 우세했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래의 학자들이 고대 시대는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전이시대, 중세는 기독교 중심의 종교 시대, 근대는 과학과 기술의 세속 시대 등으로 분류해 보려는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으로 간주된다. 그들(콘킨 등)에 의하면 서양문명은 어디까지나 위의 두 가지 본질 위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시대에 따라 나타나는 강조 차이의 기복현상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서양 문명의 본질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전통은 서로 갈등과 대립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의 협력과 이해의 관계에 있다고 보려는 것이 냉전 이후 서양 사람들의 일반적인 입장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양 문명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서양화(westernization)와 근대화(modernization), 국제 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를 통한 전쟁과 국제 분쟁을 풀기 위한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 그리고 더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무역과 문화 교류를 통하여 하나의 세계로 지향하려는 20세기 말기의 세계화 현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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