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이란은 항상 오일쇼크의 진원지였다. 여기에 중남미 ‘좌파 벨트’의 석유산업 국유화 움직임,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등도 고유가를 부추기는 불안요인이다.
세계 에너지시장은 더 이상 수급요인이 아닌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에너지포럼에서 이런 지적들이 쏟아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나이미 석유장관은 “현재의 고유가는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의 지정학적 위험요인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셰이크 아흐메드 쿠웨이트 석유장관도 “지정학적 위험요인이 유가를 배럴당 10~15달러 정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에너지연구협회(CERA)의 예르긴 위원장은 “2004년 16% 증가했던 중국의 원유수요 증가세가 지난해에는 1.7%로 둔화됐으며, 올해는 0.6%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만큼 앞으로 고유가의 향방을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란은 고유가의 진원지=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핵 연료 농축 중단 시한으로 제시한 28일을 나흘 앞두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24일 테헤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보리의 요구를 공식 거부하면서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이에 따라 안보리가 대(對)이란 제재에 착수할 경우 석유시장은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시사주간 뉴스위크 인터넷판은 이와 관련, 고유가로 인한 오일달러가 이란을 더욱 강경한 태도를 부추기고 있음을 들어 “이란과 협상하려면 전쟁이 아닌 평화를 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전쟁 당시 이란은 OPEC에서 석유 금수 조치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제1차 오일쇼크’를 일으킨 주범이 됐다. 또 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제2차 오일쇼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반면, 90년대 후반 온건개혁파 정부가 들어섰을 당시 유가는 배럴당 10달러대에 불과했다.
▶차베스의 석유국유화 정책=중남미 ‘좌파 벨트’의 맹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석유산업 국유화 정책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차베스 대통령이 장악한 베네수엘라 의회가 오리노코 강 유역에서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외국 석유업체에 대한 세금과 로열티를 대폭 올리는 방안을 검토, 이번주 안에 결론을 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최근 외국업체와 민간 주도로 이뤄지던 32개의 유전 개발계획을 베네수엘라 국영 회사에 흡수시킨 조치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고 있다. 신문은 “외국 업체들은 그동안 생산시설 건설 등에 이미 수십억달러를 투자한 상태”라며 “이들 기업의 수입 감소뿐만 아니라 원유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국제원유시장의 또 다른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목받는 러시아 ‘가스 카르텔’=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으로 각국의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천연액화가스(LNG)시장에서도 15개 수출국으로 구성된 가스수출국포럼(GECF)이 OPEC과 같은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GECF 가입국인 러시아와 알제리는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과 소나트라크의 LNG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알제리 언론들은 이와 관련, “두 회사는 새로운 가스 OPEC을 설립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탈리아 에너지기업인 ENI의 CEO인 파울로 스카로나는 유럽의회에 “우리는 소수의 공급자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라며 “3~4개의 가스 수출국들의 연합은 OPEC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문환 기자(mhlee@heraldm.com)
출처 : Fusion Power – 대중경제문화지 ‘헤럴드경제’